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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30 예술가의 손을 보신적 있으세요? (17)
제 아버지의 손은 거칠고 상처가 많으시지만 멋지고 잘 생기셨습니다.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기억하는 아버지의 손은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손재주가 남다르셨던 아버지 곁에서 무언가 만드시는 모습을 많이 지켜 봐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할머니집에 놀러가면 항상 산과 들로 데려가 주셨고 커다란 나무토막을 주우셔서
조그마한 칼로 사람이며 동물 등을 조각해 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는 미술가가 꿈이 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꿈을 접으셔야 했던 이유는 정치를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빚으로 8명의 형제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니시던 고등학교를 중퇴하실 수 밖에 없으셨고 돈벌이를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셨다고 합니다.

생계를 위해 전기기술을 배우셨고 집집마다 돌아다니시면서 버려진 TV, 라디오, 전축 등을 수리하셔서
판매하셨습니다.

얼마 전 찾아 뵈었던 이모님의 말씀으로 알게된 사실이지만 제가 갓난 아기 때 살던 사글세 단칸방에 외삼촌과
함께 방문한 이모는 기겁을 하실 수 밖에 없으셨다고 합니다.

방 한구석에 가득히 쌓여 있는 라디오더미 때문이기도 하셨지만 제 몸이 빈대와 이에 물려 벌개진
모습에 충격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해충 뿐만 아니라 먼지 가득했던 그 방은 저 혼자만에 재앙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밤낮으로 일하시느라 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시며 쓰러지셨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병을 극복하셨고 어머니께서는 그 때를 종종 회상하십니다.
"만약 아버지가 잘못되셨으면 너희 3형제는 뿔뿔히 흩어졌을 거야..." 라구요.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화장실도 없던 달동네 사글세 단칸방에서 평지로 이사왔습니다.
전세였지만 마루와 화장실이 있는 우리집이라 좋았고 무엇보다도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빚쟁이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전세집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처음으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시며 걸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틀거리시다가 갑자기 쓰러져 벽에 기대십니다.
힘없이 고개를 깊이 숙이신 아버지를 깨워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아버지, 일어나세요...여기서 이러시면 어떻해요?..."라고 저도 모르게 울먹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때서야 고개를 드시고는 저를 보시며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저는 갑자기 더 큰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두려웠고 기운없이 쓰러져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 모습에 놀라셨는지 몸을 반쯤 일으키시고는 무언가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지만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거칠던 손으로 제 눈물을 닦아 주셨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다음 날 부터 더욱 부지런해 지셨습니다.
서예를 배우시겠다고 학원에 등록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3시까지 신문지에 붓글씨를 쓰셨습니다.
단칸방이었기에 아버지 등 뒤로 새어나오는 탁상등 불빛을 보면서 잠들고는 했습니다.
그때는 불편했지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가끔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제가 고1 때 아버지께서는 서예국전에 입선하셨습니다.
일간지의 입선자 명단에 아버지 성함을 발견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 뒤로 계속해서 5번 국전에 입선하셨고 지금은 서예작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연세 때문에 더 이상 전기일을 하시는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셨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대안을
찾으셨는데 그것을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서 찾으신 겁니다.
그러면서 꿈꾸시던 예술가의 꿈도 이루신 것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초인같은 정신과 거칠지만 아름다운 손으로 오늘 날 우리가족의 행복을 있게 하셨습니다.
고비 때마다 최선을 다하셨던 모습에서 아직도 힘을 얻습니다.
이 행복을 그려내고 빚어낸 당신의 손은 진정한 예술가의 손입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지난 11월 29일은 아버지의 67번째 생신이셨습니다. 장가 못 간 형들을 대신해서 동생 내외가
아버지의 생일상을 준비했습니다.

요즈음 치아가 없으셔서 음식을 잘 못 드십니다.
턱뼈가 약하셔서 임플란트가 힘들다고 하니 더욱 걱정입니다. 그래서인지 부쩍 늙어버리신 아버지의 모습을 뵈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제나 우리들을 지켜주셨던 아버지, 이제는 우리가 지켜 드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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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동적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부터 눈물이 납니다. (흑흑)
    글 잘 봤습니다. 늦었지만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일 하시게 되어 다행입니다.

    2007/11/30 10:06
  2. 대단해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합니다..아직어린 저는 겁부터 먹고 실천은 못하고 고민만 하고있엇는데 .. 힘이나요!..

    2007/11/30 10:10
  3. 애지중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의 정(情) 말없고 묵묵하지만 따스한 부(父)정은 소리없이 우리의 마음을 녹이네요!! 우리가족의 기둥이신 아버지 힘네세요!!
    저도 두아이의 아빠인데 아이들만 보면 정말 쌓였던 스트레스 모두 날아가요. 큰딸아이가 불러주는 "아빠 힘네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네세요. 우기가 있어요!!"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사는 이유가 아닐런지~~~

    2007/11/30 11:07
  4. 클량 따봉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멋집니다 !! 아버님 기분이 너무 좋으시겠어요 ^^

    2007/11/30 12:49
  5. 클량 AIFA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님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즐겁게 지내세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재산을 가지셨네요. 나중에 클량에 아버님 멋진 작품들 보여 주세요. ^_^

    2007/11/30 12:57
  6. 여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저도 서예를 10년 정도 하였습니다만 국전입선은 정말 쉬운일이 아니죠. 삶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예술가로 거듭나신 아버님이 존경스럽습니다.

    2007/11/30 13:16
  7. 감동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젊은 저로서 희망을 가지겠습니다

    2007/11/30 14:47
  8. 그랑그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운날씨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내요

    2007/11/30 16:39
  9. 아버지 사랑해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우리 아버지 사랑해요
    엉 엉
    불효녀는 웁니다

    2007/11/30 16:49
  10. 마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부모님 같은 분이시네요.
    세상 모든 부모님 마음이 아마 한결 같으실 거예요.
    님의 아버님 손이 정말 멋지십니다 *^O^*

    2007/11/30 16:57
  11. 참숯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아버지도 화가가 꿈이셨고, 제가 어렸을때는 집에 그림도 그려서 걸어 놓으셨었는데..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신지 그 이후로 그림 그리시는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글쓴이의 아버지께 같은 마음으로 박수 보냅니다.

    2007/11/30 18:14
  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물이나네요 오래건강하세요 ^^

    2007/11/30 18:42
  13. 맹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림공부하는 학생이에요. 한국에서 미대로 유명한 대학은 나왔는데, 졸업하니 힘들더라구요. 예술이 뭔가 회의적으로 많이 느끼다, 전혀 다른일로 직장 생활했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붓을 잡거나 연필을 잡고 있을때 느끼는 행복감에 외국나와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작업하는게 너무 좋고, 예술학 공부하는 게 너무 재미는 있지만, 졸업후 어떻하나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지요. 님 아버님 얘기 저같은 사람한테는 아주 힘이 되요. 평생 기억할 이야기 입니다.

    2007/12/01 06:51
  14. 율봉태중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님이 자식을 둔 우리에게 자화상 같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내가 느꼈을 때는 늦었다는 것이 슬프게 합니다. 정말 한집의 가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였는지 이글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네요! 잠시 슬픔에 잠겨 눈물 지어 봅니다.

    2007/12/01 21:47
  15. 곳도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술의 뜻 :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모든 아버님의 인생이 예술이라고 해도 무방한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오른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과 자신의 꿈에 대한 관철 이미 예술가 이십니다.

    2007/12/02 20:24
  16. DEVMAC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7/12/02 23:23
  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7/12/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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